김홍주 《어딘가의 풍경》

-2025년 9월 27일 ~ 10월 25일-


특유의 꽃 그림으로 잘 알려진 김홍주(1945-)는 작품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현대미술의 큰 흐름 속에서 어떠한 시류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회화 세계를 구축해 온 화가이다. 

1969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김홍주는 1973년 ST 그룹에 가입하면서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당대 전위적 경향을 따라가는 개념적 오브제 작업을 시도했으나 1975년 즈음부터 실물 오브제와 그려진 이미지를 결합한 회화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극사실주의 경향의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8년에 첫 개인전을 개최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오브제와 이미지의 결합 형식에서 벗어나 인물이나 풍경 등을 주요 소재로 밀도감 높은 독특한 이미지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후반 사이에는 흙덩이나 지형, 건축물, 글자, 배설물 등의 이미지가 하나의 단위 요소가 되고 이들 단위 요소들이 모여 전체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중층적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여러 가지 조형적 실험이 시도되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커다란 화폭에 클로즈업된 꽃 한 송이의 형상을 세밀한 붓 터치의 집적으로 채워 도상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촉각적 감각을 극대화한 회화를 제작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특유의 세필 기법을 심화시켜 나갔고, 2010년대부터는 털 몇 개로 이루어진 동양화용 세필이 캔버스 천 표면의 올 하나하나에 부딪힐 때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면서 그림을 그릴 때 몸으로 느껴지는 접촉 감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촉지적 회화 작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홍주의 석사학위논문 지도교수였던 미술평론가 이일(1932-1997)은 1978년 『공간』 11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김홍주의 작품을 환영주의적 재현의 겉모습을 통해 역설적으로 일루저니즘의 허황됨을 드러내는 반일루저니즘 회화로 규정했다. 이로부터 5년 후 1983년 9월 그로리치 화랑에서 개최된 김홍주 개인전의 서문에서는 김홍주의 작품을 회화에서의 평면, 평면 위의 이미지, 이미지와 결합한 오브제의 통합을 시도하는 ‘즉물화된 일루저니즘’으로 평가한다. 이일은 김홍주의 작품을 이항대립의 구조로 파악하되 작가가 스스로 그 구조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이것이 향후 어떠한 회화 어법으로 결과할 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이후 전개되는 김홍주의 작품 세계는 이일의 비평에서 연원한 이항대립적 맥락에서 주로 읽혀지게 된다. 허와 실, 이미지와 사물, 그려진 곳과 여백, 형상과 배경, 안과 밖 등 이항대립적 키워드는 작품이 바깥 세계와 접속하는 양상에 따라 그 의미 구조가 달라진다는 관점에서 후기구조주의적 개념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일본의 미술평론가 치바 시게오(千葉成夫, 1946-)는 2019년 3월 도쿄화랑에서 열린 김홍주의 개인전 서문에서 김홍주가 작품활동 초반부터 일루저니즘과 반일루저니즘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회화를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록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목표에 끝까지 충실했다고 결론내린다. 그에 의하면 김홍주는 오랜 세월 꾸준하게 작업해온 끝에 예순 무렵에 일루저니즘과 반일루저니즘의 이분법 바깥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체적으로 직감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김홍주는 ‘무엇을 그린다’는 개념에서 벗어난 상태로서, 과거에 수많이 그려온 기억과 경험, 한편으로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싶지 않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나아가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중에 나오는 형상을 치바 시게오는 ‘형태가 될 수 없는 형태(forms that cannot be forms)’로 규정한다. 김홍주의 형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회화의 텅 빈 광활함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작품 활동 초창기부터 시작된 김홍주의 세필 기법은 그가 애초부터 그림 그리는 과정을 일종의 몸의 행위로 여겼다는 것을 암시한다. 매일 상당한 시간 동안 화폭에 세필을 부딪치는 행위를 하고 나면, 그것이 축적되어 어느 시점에 한 점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매커니즘에서 그림의 표면은 스크린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되며, 화면에서 식별되는 모티프의 지시 작용은 그 내용이 점점 희미해지게 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김홍주의 그림은 ‘풍경이 될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풍경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풍경이 아니다. 무엇 같아 보이는 형상의 테두리 너머 미지의 빈 공간이 있고, 4차원의 원뿔 바깥에 존재하여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딴 곳(elsewhere)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형상의 테두리 안쪽은 이분법의 바깥에서 균형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몸의 직감적 감각들로 가득차 있다. 몸을 쏟아 그려낸 어딘가의 풍경이다.


김정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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